파과 책 리뷰 및 독후감
📖 『파과』 – 구병모
🌸 끝을 향해 달리는 한 여성의 고요한 폭력성
『파과』는 단순한 범죄 소설도 아니고, 액션도 아니다. 이 작품은 말기 노년을 맞은 한 여성 킬러가 스스로를 바라보며 내면의 균열을 마주하는 섬세한 심리극이자, 존재의 경계를 질문하는 소설이다. 작가 구병모는 『위저드 베이커리』 이후로도 꾸준히 자신만의 문체와 리듬을 유지해왔고, 『파과』에서는 한층 더 깊고 단단한 서사를 보여준다.
주인공 ‘엄복녀’는 특이한 이름만큼이나 특별한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그녀는 평생을 암살자로 살아왔고, 지금은 몸이 망가지고 기억은 흐려지며, 삶의 말미에 서 있다. 누군가를 지우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오던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이 살해한 사람들과의 기억 너머에서 이상한 ‘균열’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죄책감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파과’—즉, 깨짐이다.
🪞 노년의 여성, 그리고 보이지 않는 균열
이 소설이 흥미로운 이유는 노년의 여성이라는, 한국 문학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주체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다. 단순히 나이 든 여성으로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독과 회한, 그리고 일그러진 자아를 감싸고 있는 감정의 틈을 천천히 보여준다. 그녀는 누구보다 강하고, 누구보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이야기의 후반으로 갈수록 드러나는 감정의 파장은 잔잔하면서도 치명적이다.
작가는 복녀의 일상과 기억, 신체의 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하며, 이 노년의 ‘전문가’가 왜 흔들리고, 어떤 식으로 무너지는지를 촘촘하게 보여준다. 이 균열은 단순한 노화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근본적인 의문—‘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로 이어진다.
🔪 폭력은 정말 냉정한가?
복녀는 폭력을 행사하되, 감정이 실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캐릭터다. 그녀의 폭력은 무기계처럼 정확하고 단정하며, 냉정하다. 하지만 그녀가 살해한 대상들에 대한 잔상, 그리고 소소한 일상 속 인연들—의뢰인, 대상, 그리고 고양이까지—이 복녀의 내면에 조금씩 균열을 만든다.
이 소설은 그 ‘감정 없는’ 폭력의 틈 사이에서, 인간적인 무언가를 드러낸다. 그건 연민일 수도 있고, 체념일 수도 있다. 어쩌면 존재에 대한 마지막 질문일지도. 결국 『파과』는 죽음에 이르는 여정 속에서, 그 마지막까지 ‘사람’으로 남고자 했던 한 여성의 고백에 가깝다.
💫 언어와 리듬의 힘
구병모의 문장은 시적이다. 건조한 듯 보이면서도 정제된 감정이 흐르고, 느리지만 단단하게 이야기를 밀어붙인다. 군더더기 없는 문체는 마치 복녀라는 인물 자체처럼, 조용하지만 무서운 힘을 지녔다. 이 책은 빠르게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다 보면, 어느새 독자는 그 리듬에 빨려들고 만다.
『파과』는 ‘파괴’의 다른 말일 수도 있고, ‘깨달음’의 다른 말일 수도 있다. 이 제목처럼, 이 책은 파열을 통해 새로운 시선을 갖게 하는 책이다. 단단히 뭉친 정서가 마지막 순간 툭 하고 터지는 그 찰나를 기다리게 만든다.
🌿 이런 분께 추천하고 싶어요
- 노년의 여성 주인공이 중심인 이야기에 관심 있는 분
- 잔잔하면서도 강한 심리 소설을 좋아하는 분
- 폭력과 존재,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본 적 있는 분
- 구병모 작가의 밀도 있는 문체와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
- 연극, 영화, 뮤지컬로 각색 가능한 서사를 찾는 창작자
📌 다정한 메모
『파과』는 누군가의 인생이 끝나가는 시점에, 그 사람이 남긴 자취를 천천히 따라가는 책이다. 그 잔향은 단순한 삶의 기록이 아니라, 존재의 무게에 대한 묵직한 질문이 된다. 격렬하지 않지만 처절하고, 과장되지 않지만 더없이 진실하다. 복녀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모두 스스로의 이름을 다시 돌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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