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년이 온다』 – 한강
🔶 죽음이 말하는 소설, 침묵이 울리는 문장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소설이다. 이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가슴 한편이 아릿하고, 문장 하나하나가 뼛속 깊이 파고드는 듯한 여운을 남긴다. 우리는 종종 ‘역사’를 연표로, 기사로, 숫자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 ‘기억’이라는 말에 살과 피와 목소리를 입힌다. 이름 없는 사람들, 말하지 못한 사람들, 끝내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통해, 우리가 그간 외면해온 진실을 문학의 언어로 드러낸다.
🌼 소년의 시선, 망자들의 서사
소설은 열다섯 살 소년 ‘동호’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친구의 시신을 찾기 위해 도청으로 들어간 소년.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하는 죽음들. 동호는 실존했던 수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의 대변자가 되어, 우리가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대신 들려준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동호를 기억하는 이들이 화자가 되어, 마치 죽은 자들의 고백처럼, 하나씩 그날의 상처와 기억을 꺼낸다.
이 구조는 단순한 서사 이상의 힘을 갖는다. ‘나’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더라도, 하나의 공동체적 트라우마로서 그 고통이 여전히 사회 속에 잔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한 명 한 명의 삶과 죽음이 서로 얽혀 있는 이 소설은, 그 자체로 하나의 합창이며 증언이다.
🌿 폭력의 얼굴을 외면하지 않는 문장
한강의 문장은 무척이나 절제되어 있다. 군더더기 없이 말하는 대신, 오히려 말하지 않는 것을 통해 말보다 더 큰 울림을 만든다. 구체적인 묘사 없이도, 고문 장면이나 시신의 묘사는 생생하다. 그 이유는 작가가 사건의 자극성을 부각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폭력의 실체가 얼마나 일상 속에서 인간을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소설 후반부, 한 인물이 고문을 당하고 풀려난 후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라”고 강요받는 장면은, 육체적 고통보다 더 큰 ‘침묵의 폭력’을 보여준다.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사회, 말하면 안 되는 분위기, 살아남았지만 죽은 자처럼 살아야 하는 현실. 이 소설은 그런 침묵의 구조 자체를 고발한다.
🕊 기억의 윤리, 살아남은 자의 숙제
『소년이 온다』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현재를 향한 물음을 던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이어받을 것인가? 살아남은 자들은 과연 자유로운가? 작가는 직접적인 해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각각의 인물들이 품고 살아가는 고통과 침묵, 죄책감과 분노를 통해 그 질문을 독자의 가슴에 묻는다.
그리고 그 물음은 1980년의 광주에서 멈추지 않는다. 오늘의 사회,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말하지 못하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 사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힘이, 이 소설의 가장 깊은 울림이다.
🌸 마무리하며
『소년이 온다』는 읽는 내내 쉽지 않은 감정을 마주하게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소중한 책이다. 죽음을 말하는 책이지만, 동시에 삶에 대해, 인간에 대해, 연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문학이다.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의 최전선에 선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이런 분께 추천해요
- 광주민주화운동을 인간적인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고 싶은 분
- 고통과 상처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싶은 분
- 역사의 침묵 속에서 문학이 어떤 방식으로 증언할 수 있는지 궁금한 분
- 한강 작가의 문장과 세계관을 온전히 느껴보고 싶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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