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의 증명』 – 최진영
🪜 불완전함의 계단에서 마주한 증명의 순간들
“구의 증명”이라는 제목은 어쩌면 수학적 정리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 소설은 이성과 논리를 넘은 감정과 고통의 연산이다. 삶이라는 거대한 방정식 안에서 누군가의 존재와 상처를 ‘증명’해낸다는 것은 가능할까? 최진영 작가는 이 책에서 죽은 언니를 향한 동생의 내밀한 서사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감정과 기억을 애써 증명해내려 하는지를 고요하게 되묻는다.
이야기의 중심은 ‘구’라는 이름의 언니를 잃은 한 인물이다. 그녀는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남기고 사라졌지만, 동생의 내면에서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책은 언니가 떠난 후의 시간, 그리고 언니가 떠나기 전의 시간들을 교차로 서술하며, 독자로 하여금 마치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러나 이 일기는 공감과 고통을 공유하게 만드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작가의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깊다. 일상적인 단어 속에 함축된 감정의 파장은 놀랍도록 크다. 유년기에서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기까지, ‘나’라는 인물은 언니의 죽음을 둘러싼 감정의 잔해 속에서 길을 잃었다가, 결국에는 그 상실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는 슬픔을 밀어내기보다는 곁에 두고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작가가 죽음을 다루는 방식이다. “구의 증명”은 죽음을 비극이나 종말로만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어떤 생의 이면이자, 남겨진 자들이 자신을 직면하게 되는 시작점처럼 다가온다. 죽은 언니를 기억하고, 그녀의 존재를 증명해내려는 동생의 몸부림은 결국 ‘산 자로서의 나’를 증명해내는 여정이기도 하다.
계단 위에 떠 있는 문, 그리고 그 문을 지나 어디로든 이어질 듯한 표지처럼, 이 소설은 물리적인 공간을 넘은 심리의 공간까지 이끈다. 독자는 문 하나를 열 때마다 다른 장면, 다른 감정, 다른 세계를 마주하게 되며, 그 끝에서 비로소 자신만의 ‘증명’을 떠올리게 된다.
📌 다정한 메모
읽는 내내 마음 한편이 쿡쿡 쑤셨다. ‘증명’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애틋하고 슬플 줄은 몰랐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건, 어쩌면 그 사람의 슬픔과 죽음마저 껴안는 일일지도 모른다. “구의 증명”은 그 껴안음의 무게를 조용히 건네준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문득 누군가에게 “너는 존재했었고, 나는 그것을 안다”고 말해주고 싶어졌다.
📚 추천하고 싶은 분들
- 상실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사람
- 잊힌 존재를 다시 떠올리는 이야기를 찾는 독자
- 감정의 섬세한 결을 따라가는 문장을 좋아하는 이들
- 청소년기의 내면 풍경을 다시 바라보고 싶은 성인
- ‘죽음’이라는 주제를 조심스럽게 마주하고 싶은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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