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마토 컵라면』 – 차정은
🍅 청춘의 여름, 그 붉은 기억을 시로 끓이다
『토마토 컵라면』은 차정은 시인의 첫 시집이다. 낯선 제목, 생경한 조합. 토마토와 컵라면, 뜨겁고 끈적한 어떤 여름의 상징처럼 보이는 이 조합은, 시인이 그려낸 청춘의 감각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 시집은 단순히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다정했던 시절의 감각,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 그리고 누구나 마음속 어딘가에 숨겨두고 사는 기억을 담담히 끌어낸다.
시인은 토마토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 여름에 가장 선명했던 색이 토마토 레드였다고 고백한다. 그 색으로 시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시집은 단지 '토마토 컵라면'이라는 음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름’이라는 계절, ‘사랑’이라는 감정, ‘기억’이라는 체온을 끓이는 그릇 같은 존재다.
☀️ “당신은 토마토 레시피 같아요”
이 시집은 크게 세 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푸른 태양>, 2부 <붉은 항해>, 3부 <빨갛게 빛나는 것들>. 시인은 푸른 햇빛 아래서 시작된 사랑이 붉은 열기를 지나 마침내 서늘한 이별의 기억으로 귀결되는 과정을 시의 흐름으로 녹여낸다.
시집 속에는 ‘토마토 레시피’, ‘토마토 소년’, ‘토마토 컵라면’ 등 토마토를 반복적으로 호출하는 시어들이 등장한다. 이는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다. 붉고 둥글고 익어가는 시간들, 말랑한 감정, 어설픈 위로 같은 감정의 상징이자 이 시집을 꿰는 키워드다.
그 중에서도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토마토 컵라면>이라는 시는 한 계곡가에서 친구들과 라면을 끓여 먹던 풍경에서 시작된다. 뙤약볕 아래서 먹은 그 국물의 맛, 무심하게 건네진 젓가락, 그리고 묘하게 뜨거웠던 눈빛이, 시인의 감정 안에서 다시 끓어오른다. 뜨거우면서도 시원했던 여름의 기억은, 독자에게도 각자의 '토마토 컵라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 처음과 끝, 숫자 속의 감정 구조
이 시집은 또 하나의 독특한 장치를 갖고 있다. ‘99’로 시작해 ‘0’으로 끝나는 구성이다. 99는 어쩌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마음, 끝내 도달하지 못한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0은 완전히 비워낸 감정, 혹은 다시 시작하는 자리일 수도 있다. 숫자로 감정을 연결하는 방식은 감각적이면서도 명확하다.
시의 흐름은 과거의 어느 시절을 천천히 돌아보며 따라간다. 어린 시절의 장면, 첫사랑에 대한 막연한 열망, 관계의 어긋남, 말하지 못한 고백,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나친 장면들이 문장 속에서 다정하게 복원된다.
🧊 차분하지만 분명한 열기
차정은의 시는 시끄럽지 않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감정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깊은 울림이 있다. “가슴이 간질간질하다”는 한 중학생 독자의 리뷰처럼, 이 시집은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그는 대체로 짧은 시어, 평이한 문장을 사용하지만, 그 끝에서 묘한 잔상을 남긴다. 그리고 그 잔상이 곧 기억이 되고, 여운이 된다. 누구에게나 지나간 여름이 있고, 누구에게나 다 말하지 못한 감정이 있다. 이 시집은 그 감정을 조용히 불러내어 풀어준다.
🌿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청춘의 감각과 여름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은 분
- 서툰 첫사랑이나 말하지 못한 고백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
- 시를 처음 접하지만,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느끼고 싶은 독자
- 낯선 조합의 이미지(토마토+컵라면)에 끌리는 감성 독자
- 독립출판 시집 특유의 자유롭고 생동감 있는 표현을 선호하는 분
📌 다정한 메모
『토마토 컵라면』은 마치 여름방학 끝자락, 방 안에 앉아 오래된 사진을 한 장씩 넘겨보는 기분을 준다. 시인이 말한 것처럼, 이 시집은 실제 기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감정만큼은 실제였고, 그것이 우리 각자의 여름과 묘하게 겹친다.
읽고 나면 문득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고, 그 시절의 온도와 냄새가 마음 한구석을 적신다. 이 책은 거창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진하다. 오늘 하루를 조금은 천천히 걷고 싶을 때, 『토마토 컵라면』은 당신의 옆자리를 조용히 지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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